[105호] 무시당하고 있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
무시당하고 있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
지키지 않으면 권고기준이 무슨 소용?
2013년,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자살 보도의 파급력을 고려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 2.0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자 2번이 개정된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이 2018년에 발표됐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은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으로 제정한 기준으로, 자살 보도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언론과 개인이 자살예방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자 마련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개정된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현재 잘 지켜지고 있을까?
지난 2019년, 연예인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많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극단적 선택’과 같은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은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난다. 그리고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자살자의 거주지, 나이, 직업, 경력 등 구체적인 신상을 밝히는 것은 유가족을 보호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 신문사는 고인의 자택 위치를 상세히 언급한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7월, 박원순 서울 시장 사망과 관련한 기사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보도됐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자살로 명확히 판정되기 전까지 사인을 자살로 추정하거나 단정하면 안 된다. 하지만 당시 박원순 서울 시장의 실종 신고가 알려지면서 시신이 발견되기도 전에 박원순 시장의 자살을 추측하는 기사들이 난무했다. 시신이 발견되고 난 후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취재진들이 고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진행된 경찰의 브리핑 현장에서 시신의 상태, 사망 방법 등 비윤리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이 방송에 송출됐다. 심지어 한 방송사는 박원순 시장의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방송하기까지 했다. 이 또한 자살과 관련된 영상 자료 사용을 자제하라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난다.
최근에는 한 신문사가 ‘단독’이라는 말을 붙여 개그우먼 박지선의 어머니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의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 존중을 위하여 유서와 관련한 사항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신문사는 유가족들의 유서 공개 거부 의사와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도 불구하고 유서 내용을 보도했다. 또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자살이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되기 때문에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서 내용이 공개되고 고인이 앓았던 지병이 대두되면서 고인의 사망 이유를 지병과 엮어 추측하는 기사들이 즐비했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나는 기사들은 시정권고 조치를 받는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권고기준에 어긋나는 기사가 논란이 되면 그저 삭제를 하거나 수정을 하고 사과를 하는 선에서 끝낸다. 현재 시정권고만으로는 이런 무책임한 행동들은 계속 반복시킬 뿐, 무분별한 자살 보도량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게다가 언론의 보도 내용을 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런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안에서 자살 보도와 관련한 교육을 철저히 하고, 기자들은 항상 자살 보도 권고기준의 중요성을 상기하며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자살 보도 권고기준은 언론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SNS,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사용자들도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살 보도를 접하는 대중들도 이를 화젯거리로 소비하는 태도가 아닌 진정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최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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