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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 그의 20대 - 조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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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경상대학 편집부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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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 변호사의 부끄러움으로


* 안락할 수 있었던 수석 합격생



여느 법조인처럼 그도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할 때 그가 장미빛 미래를 꿈꾸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서울대 수석 입학생이었다. 굳이 수석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근엄한 법복을 입은 검사나 변호사의 미래가 보장된 법학과 학생이었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그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65년에 한일회담이 있었고, 그도 굴욕적인 정부의 처사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친구들이 시위 참여 때문에 징계 처분을 받았지만, 수석 입학생인 조영래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런 그가 뒤늦게 사법 시험을 준비했다. 4학년 때였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언조차 보장하지 않는 세상을 한두 번의 시위나 몇 장의 유인물을 가지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느 학생들처럼 유신에 대해 토론하고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던 그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을 직접 할 생각은 못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변호사가 되겠다는 조영래는 그들의 눈에 변절자로 보였다. 당시 그와 함께 시대를 걱정하며 공부했던 친구들, 그의 결정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친구들은 손학규, 장기표 등이었다.



일단은 대학원에 들어갔고, 1년 남짓 한 공부로 1971년에 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법조인이 될 조영래에게 '법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법 연수원에 입소하지마나 그는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조영래, 이신범, 장기표, 심재권 등 서울대 출신의 네 사람이 현 정권을 타도하고 새 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그는 조작된 내란 음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그는 검찰에서는 일단 시인을 하고 법정에서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생각이었다. 그러나 법과 법조인에 대한 그의 생각은 순진했다. 판사는 검찰의 의견을 모두 수용했을 뿐,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내란 음모자치고는 너무 가벼운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 왜 현실은 책에서 배운 대로되지 않는가?"



감옥에서 그의 주위를 맴돌았던 질문이다. 조영래는 '인간을 위한 법'이 아닌 '법을 위해 인간이 재단되는 현실'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한 세상과 인간을 위한 법을 위해 그가 할 일을 떠올렸다. 나이 스물 여섯에 조영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책대로, 논리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은 안락하고 평범한 법조인이 될 수 있었던 한 젊은이의 운명을 바꾸고 있었다.




* 전태일을 만나다.



출옥 후에 그는 <전국 민주청년 학생 총 연맹(민청학련)>에 가입했다. 1974년 1월에 정치적인 학생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가 발표되었고, 그는 유신을 끝내기 위해서는 학생 투쟁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차례의 투옥으로 유신의 실상을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그의 결론은 싸워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조직 사건이 터졌고 그는 검거를 피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스물 일곱의 조영래는 수배자가 되었다. 그의 수배 생활은 박정희 정권이 마감되는 1979년 10월까지 계속 되었다.



그의 20대 후반은 도피 생활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 그러나 무엇인가를 해야 했던 조영래는 자신을 불살랐던 한 청년을 생각했다. 1970년, 고시공부를 하고 있던 절에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들었다. 시험을 앞두고 있던 그는 장례를 거드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법조인이 되려고 현실을 등졌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노동자가 전태일 이었다. 대학 공부까지 마친,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 갈 때 고시 공부를 했던 조영래에게는 일종의 부채감이 있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 그는 "인간을 위해서....."라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결심을 한다. 그리고 70년대 한국에서 가장 소외 받는 사람들, 노동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의, 아니 우리 사회 지식인의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떨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수배 기간은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는 힘들지만, 조심만 하면 차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태일의 삶을 추적하기로 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던 한 노동자의 죽음이 쉽게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그는 전태일의 전기를 쓰기로 했다.


전태일의 어머니를 만나 인간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전태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평화 시장을 찾았다. 자신의 버스비로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게 간식을 사 주고 자신은 걸어서 집에 오곤 했던 사람, 노동법의 존재를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무척이나 우울해졌다. 책에서만 읽었던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추적하는 과정은 그의 부채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온통 한자로 쓰여진 노동법을 읽을 수 없다는 전태일의 말이었다.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조영래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 역시 전태일의 죽음을 방관한 한 명의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를 살려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인간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쓸 수 있는 글이 전기문인 까닭에 그는 전태일이라는 젊은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스스로 전태일이 되어 허리를 펼 수도 없을 정도로 낮은 2충 작업대에 앉아보기도 하고, 열 살이 조금 넘은 여성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전태일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노동 현실의 여전한 현장을 봤다.


전태일을 살리면서 조영래 자신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의 나아질 길 없는 생활을 목격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을 되길 바랬다. 감추어진, 감추어지도록 강요당하는 진실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은 변호사 조영래의 미래를 만들고 있었고, 세상을 바꾸는 책을 만들고 있었다.


1979년 10월에 유신이 무너졌고, 조영래도 수배가 풀리고 복권되었다. 20대에 쓰기 시작한 전태일의 전기도 그의 나이 서른이 넘어 완성되었지만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업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유신 시절이 끝난 후에도 '노동자'라는 말과 함께 금기시 되었다. 전태일의 전기는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1983년에[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책이 우리 나라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전태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할 수도 없었으며, 책의 저자 조영래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었다.



* 변호사는 어떤 사람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결심한 대로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전태일을 만나면서 되새긴 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변호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 변호사'라는 낮선 직업을 가진 사람 조영래를 만나게 된다. 1982년에 사법 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그 이듬해에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열었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힘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한 사무실이었다. 그는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될 것 같으면 무료로 변호를 했다. 1984년에 망원동 수재민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피해 보상 소송에서도 그랬고, 연탄 공장이 있는 상봉동에 사는 박길례 씨 진폐증 사건에서도 그는 변호를 자임했다. 그래서 무책임한 행정관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진폐증이라는 공해병을 세상에 밝혔다.



전태일의 삶을 따라가면서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던 조영래는 그에 비길 만한 현실과 마주 대한다. 1986년에 '부천 경찰서 성(性) 고문 사건'이 있었다. 위장 취업 때문에 공문서 위조죄로 경찰서에 잡혀온 여대생을 경찰이 폭행을 했고, 그 여성은 전두환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했다. 아직 20대였던 그 여성은 수치스러움에도 폭행을 용감하게 밝혔지만, 언론은 그녀의 행동을 "성까지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매도하며 폭행 사실을 은폐했다. 조영래는 그녀를 면회했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문자를 고발했다. 그리고 그녀의 변호인이 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정권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로 변호를 했다.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정권의 폭력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87년에 박종철 열사를 고문으로 죽인 전두환 정권은 무너졌다. 변호사 조영래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그러나 변호사인 그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만족해야 했다.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서도 투쟁이 필요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는 인권 변호사로 살았다. 답답한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일까. 1990년, 그는 마흔 네 살에 폐암으로 죽었다.



한 인간에게서 지사(志士)와 투사(鬪士)의 모습을 함께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사에게 투사는 감성적인 사람이며, 투사에게 지사는 몽상가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조영래는 지사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현실을 아파했지만, 그 현실에 직접 몸담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변호사가 되어 현실과 가까워지려 했다. 그러나 한 명의 지사가 있어, 전태일이라는 투사가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로 시작되는 [전태일 평전]의 첫 구절처럼, 그는 지식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며 살았던 우리 시대의 변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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