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은은 이전에 도움을 청하러 경찰서에 홀로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경찰은 지은의 아버지에게 앞으로는 애를 잘 보살피라는 충고만 할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지은은 꾸준히 동네 슈퍼 앞에 앉아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길 기다렸지만 그 누구도 지은의 옷차림과 몸에 난 상처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똑같은 아픔을 가진 상아만이 자신을 미쓰 백이라 부르라며 수평적인 관계에서 지은을 이해하려 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보듬어 주었다. 상아가 그날 우연히 지은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다른 누군가가 지은을 먼저 발견하고 손을 내밀어 주었을까?
실제로 중앙 아동 보호 전문기관에 따르면, 재작년까지 아동학대 신고율은 매년 증가했지만 지난해부터 신고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사실상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며, 최근에는 정직하면 손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아동학대 고발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신고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함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더더욱 필요하다. 작중 지은의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렇게 맞고 살았는데 안 죽었잖아. 이 꼴 보고 자란 걔 인생도 나랑 뭐 크게 다르겠어?”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실제 아동학대의 80.5%가 친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데, 자녀를 학대한 이들 부모의 60%는 유년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이처럼 아동학대는 단순히 학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돼 또다시 자녀를 학대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영화 속 상처받은 어른과 아이는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상처를 치유해 간다. 트라우마로 인해 남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항상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지은은, 이제는 내가 미쓰 백을 지켜주겠다며 약속한다. 상은은 이야기한다. "나는 무식해서 너한테 가르쳐 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어. 대신 네 옆에 있을게. 지켜줄게." 아이를 절망으로부터 끌어내는 데에는 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 것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들 스스로가 잘못을 인지하고 학대를 멈추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신고와 관심은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지만 반드시 내야 할 용기가 있다. 이 용기는 세상을 바꾸고, 다가설 때 절망과 외로움은 빛을 찾는다.
우리에겐 미쓰 백이 필요하고, 우리는 모두 미쓰 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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