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도, 자신과도 타협할 수 없었던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 내로라 하는 권세가들이 예약해 놓은 그림들이 잔뜩 밀려있는데도 한달 넘게 술을 껴안고 방안을 뒹굴 뿐인 장승업은 이 영화를 만든 임권택 감독의 소망이 담긴 자화상 같다. 왕이 불러 그림을 청해도 자기가 싫으면 궁궐을 뛰쳐나온 자유인으로, 세속적인 가치를 버리고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살아낸 환쟁이로 그를 표현한다. 장인정신으로 충만한 자유인, 이건 뛰어난 예술가들의 공통된 초상이다.
장승업의 주된 이미지는 고통이다. 고통을 참아내려고 밤새 술 마시다 취기로 그린 그림은 술병을 들고 춤추며 서 있는 원숭이다.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술에 취해 중국풍의 그림체를 따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그는 원숭이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보며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고, 사대부들을 욕하며 고통을 이겨낼 무언가를 갈구하면서 그는 생애를 살아간다. 꽃과 새, 인물, 산수 등 우아하고 화려한 그림만 그리며 당대의 인기 화가 대열에 우뚝 섰지만 정작 그의 무의식은 이처럼 자학으로 가득 차 있다.
당대 최고의 화가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화폭 위를 방황하던 취객으로 시대와 자신마저도 타협하지 않던 그의 모습은 현재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써는 이해되지 않을 일이지만,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 평생을 살아온 그의 끈기와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 또한 속세의 잡다한 가치를 버리고, 드높은 장인정신으로 예술의 가치를 뛰어넘은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
현재 세계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에 경쟁부분으로 초청된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에 하나의 큰 점을 찍을 것이며,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에 이바지를 할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처럼,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알릴 수 있는 영화가 많이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